한-미 FTA 발효 5년 ②
쇠고기 15년간 관세 감축 … 관세 다 사라지면 ‘무방비’
농식품부 “큰 피해 없다” … 정부합동자료에 1장만 첨부
[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한-미 FTA 발효 5년이 되는 3월 15일을 앞두고 산업통상자원부가 ‘상호 윈윈 효과’를 얻었다는 긍정적 입장을 발표한 가운데 이를 반박하는 전문가들의 근거도 속속 나오고 있다. 특히 농업분야의 경우 발효 4년차와 비교해 수입이 줄고 수출이 증가한 단편적인 결과를 제시하며 마치 한-미 FTA로 인한 큰 피해가 없는 듯 발표해 ‘오류를 넘어 의도적 왜곡’이라는 지탄을 받고 있다. 쇠고기는 40% 관세 중 절반도 안 줄었는데 작년보다 수입량이 46% 증가하고 수입과일은 한-미 FTA 발효 전 평년(2007년~2011년 최대·최소를 제외한 평균값)과 비교해 지천인 상황을 ‘선방했다’고 보는 농림축산식품부의 적당주의가 적폐라는 지적이다.
관세 완전철폐 전인데 … 이미 미국산 농축산물 범람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주형환, 산자부)는 한-미 FTA가 발효된 5년에 대해 “세계 경기 위축 속에서도 한-미 양국 교역은 증가세가 지속됐다”며 두 나라가 △수입시장 점유율 상승 △서비스 교역 증가 △고용창출과 경제성장에 기여했다는 점을 들어 “상호 윈윈(win-win)효과를 시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통계’의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사뭇 달라진다는 주장을 통해 제동을 걸었다.
지난 15일 ‘한-미 FTA 발효 5년, 쟁점과 과제’를 주제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의원이 주최한 국회 토론회에서 정태인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대한무역협회는 한국의 대세계 교역증가율(5년 동안 평균 -3.5%)과 비교해 대미 교역 증가율이 1.7%를 기록한 것은 한-미 FTA 덕이라고 해석한다”며 “그러나 한국의 대세계 교역 증가율이 뚝 떨어진 것은 지난 2년 동안 대중국 교역이 두 자릿수 마이너스 증가율을 보인 탓 일 테고, 한-중 FTA도 2015년 발효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중국 성장률이 2015년부터 6%대로 급감한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수출증가율, 교역량 증가 등을 한-미 FTA 효과로만 단정 지을 수 없다는 뜻이다.
반면 농업분야는 피해상황이 뚜렷하다. 산업통상자원부도 보도자료에서 미국측의 한-미 FTA 발효 이후 주요 성과에 ‘농축산물·자동차 수출 확대’를 꼽았다. 미국의 쇠고기 수출액은 2011년 6억8,600만달러에서 2016년 10억5,400만달러로 54% 늘었다. 미국의 체리 수출액은 2011년 4,000만달러에서 1억1,100만달러로 183%, 두 배에 육박하는 증가세를 보였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송기호 변호사(민변 국제통상위원회장)는 “정부 발표나 언론 등의 발표를 보면 지난 5년간 농업부분에 큰 희생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애초 한-미 FTA는 농축산물의 관세를 10년이나 15년 등 장기철폐로 뒀다. 미국산 쇠고기만 보더라도 기존 40% 관세가 15년간 사라진다. 현재 25% 정도로 관세가 낮아졌는데, 관세가 0% 돼야만 본격적이고 강력한 충격효과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직 파괴력이 낮은 단계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액은 발효 전 평년(2007년~2011년)과 비교해 59% 급증한 상태다.
송 변호사는 특히 “수입으로 인해 국내 농축산물에 피해가 발생하면 농민 보호 차원에서 세이프가드를 통해 관세를 더 부과할 수 있는 조치가 있다. 그런데 한-미 FTA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아예 세이프가드를 시행할 수 없게 했다”면서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림축산식품부, 한-미 FTA 농업피해 눈감나
농림축산식품부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을 통해 매년 한-미 FTA 발효 결과에 대한 분석자료를 펴낸다. 지난 14일 농경연은 ‘한-미 FTA 발효 5년 농축산물 교역 변화와 과제’에서 이행 5년차인 2016년 “미국산 농축산물 수입액은 전년 대비 3.5% 감소했고, 이행 3년 차 이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고 “대미 농축산물 수출액은 전년 대비 14.4% 증가하면서 발효 이후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요약했다.
그러나 5년차 수입액을 4년차가 아닌 발효 전과 비교해 보면 한-미 FTA의 파괴력을 실감하게 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액은 발효 전 평년 3억100만달러에서 발효 5년차인 2016년에 10억3,500만달러로 59%(농경연은 쇠고기의 경우 미국 광우병 발병으로 수입금지 조치에 따라 2011년 수입액 6억5,300만달러 기준으로 산출했다고 밝힘. 수입량 기준 31%↑) 급증했다. 같은 기간 돼지고기 수입액은 75%(수입량 52%↑), 치즈 200%(수입량 208%↑), 분유 1,316%(수입량 2,019%↑) 늘었다.
미국산 오렌지 수입액은 발효 전 평년 1억1,000만달러에서 발효 5년차인 지난해 2억1,000만달러로 91%(수입량 58%↑) 증가했고, 같은 기간 체리 수입액은 267%(수입량 230%↑), 포도 153%(98%↑), 레몬 305%(187%↑), 자몽 145%(102%↑) 늘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한-미 FTA가 상호 윈윈 효과를 냈다’고 발표한 보도자료에 농식품부가 달랑 1장짜리로 첨부한 ‘농축산물 교역’에선 읽을 수 없는 지난 5년간 우리 농업에 미친 피해상황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김영호, 전농)은 15일 성명을 통해 “한-미 FTA 5년, 농업의 재앙이고 민족의 위기이다”고 정부의 긍정적 발표를 전면 반박했다. 전농은 “정부는 한-미 FTA 성과를 치켜 올리는 내용을 발표하고 보수언론은 한-미 FTA에 대한 우려는 괴담에 불과했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면서 “통계청이 발표한 실업률 최고치는 한-미 FTA 성과가 왜곡과 거짓이라는 증명”이라고 비판했다. 또 농업부분 피해에 대해서도 “오류를 넘어 의도적 왜곡”이라고 지적하며 “한-미 FTA에 대한 농업피해는 예상과 같이 나타나고 있으며, 더 큰 문제는 50여개 나라의 동시다발 FTA로 한국농업은 뿌리째 뽑히고 있다”고 농업붕괴 현실을 거듭 경고했다.
실제 2011년과 비교해 2015년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민의 지표는 나날이 쇠락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12월 말 발간한 ‘농림축산식품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1년 농가수는 116만3,000농가에서 2015년 108만8,000농가로 6% 감소했고, 농가인구 또한 296만2,000명에서 256만9,000명으로 13% 급감했다. 한육우 사육농가는 2011년 16만3,000가구에서 2015년 9만4,000농가로, 한육우 사육두수는 같은 기간 295만두에서 267만6,000두로 9% 줄었다. 과수 또한 사과와 자두를 제외하고는 생산면적과 생산량이 줄고 있다. 배는 2011년 1만5,000ha에서 1만3,000ha(생산량 29만톤->26만1,000톤), 포도는 1만7,000ha에서 1만5,000ha(생산량 26만9,000톤->25만9,000톤)로 각각 감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