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전체를 주도하는 정책 이슈 ‘기본소득’
영국 <가디언>이 세계적 기본소득 주창자로 꼽은 이재명
허무맹랑하고 꿈같은 이야기에서 대선의 가장 뜨거운 쟁점으로 변모했다. 지금까지 세 차례 진행된 더불어민주당 TV토론에서 ‘기본소득’은 ‘사드’ ‘대연정’ 등과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된 이슈 가운데 하나다. 대연정이 정책 이슈가 아닌 정치적 쟁점이고, 사드 문제에 시기적 특수성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본소득은 이번 대선 전체를 주도하는 정책 이슈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그런 것도 있다’에서 ‘그것을 하자’로
<한겨레21>은 그간 지속적으로 기본소득 문제를 보도해왔다. 3년 전인 2014년 3월 창간 20주년 기념호 제1000호의 표지이야기로 기본소득을 다뤘다. 당시 최우성 편집장은 논쟁적 주제인 기본소득을 굳이 1000호 표지이야기로 소개하는 까닭을 설명하며 “아직은 현실성이 극히 떨어지거나 되레 부작용마저 낳을 수 있는 카드”일지 모르지만 “더 큰 용기와 더 담대한 행보로 사회적 상상력의 용광로를 뜨겁게 달궈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지금까지 세 차례의 표지이야기를 비롯해 크고 작은 특집 기사와 추적 기사, 그리고 ‘스토리펀딩’을 통해 기본소득의 문제의식을 공론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특히 기본소득 스토리펀딩은 시민들의 종잣돈을 모아 기본소득을 직접 실행해보자고 제안한 국내 언론 최초의 프로젝트였다. 기본소득 월 135만원(2017년 최저임금 기준)을 1명에게 6개월간 지급하는 실험은 아직 진행 중이고 제1129호 ‘기본소득 주인공을 찾습니다’ 기사에서 그 과정이 보도됐다. <한겨레21>의 보도 뒤 지난 3년여 동안 기본소득 문제는 ‘그런 것도 있다’는 수준에서 ‘그것을 하자’로 전진해왔다.
이 과정을 정치적으로 주도했던 이들은 이재명 성남시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성남시의 청년배당과 서울시의 청년수당은 기본소득 도입은 아니지만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지평을 크게 확장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 시장은 2015년 “지옥과도 같은 ‘헬조선’에서 희망을 잃어버린 청년들에게 작은 희망을 주기 위한 시도”로 청년배당을 지급한다고 밝힌 뒤 지금까지 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의 청년배당 정책은 성남시에 3년 이상 거주한 만 19~24살 청년을 대상으로 연 100만원의 배당금을 분기별로 25만원씩 현금이 아닌 성남사랑상품권으로 지급하는 사업이다.
서울시 역시 서울에 거주하는 만 19~29살 청년 중 중위소득 60% 이하 미취업자나 졸업유예자 등에게 매달 50만원씩 최대 300만원의 청년수당을 지급하는 사업을 시행했다. 그러나 이 사업은 ‘포퓰리즘 정책’이란 박근혜 정부의 반대로, 2016년 8월4일 1차분 50만원이 지급된 뒤 중단됐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대선에 출마하며 성남시 청년배당의 문제의식을 대폭 확대한 기본소득 도입을 공약했다(제1152호 ‘이재명의 콧구멍이 벌렁거리던 순간’ 참조). ‘연 30만원 토지배당과 연 100만원 생애주기별·특수 배당’이 핵심이다. ‘국토보유세’를 신설해 걷은 세금 15조5천억원을 바탕으로 모든 국민에게 아무 조건 없이 연 30만원의 토지배당을 지급하고, 아동·청년·노인 등 만 30살 미만과 만 65살 이상 연령대에게 생애주기별로 연 100만원, 그리고 농어민과 장애인에게 1인당 연 100만원의 특수배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골자로 한다. 이재명 시장은 각자가 받는 기본소득이 얼마인지 확인할 수 있는 ‘기본소득 계산기’를 운영 중이다.
기본소득 공약 ‘선별적 복지’에 머물러
물론 이재명 시장의 기본소득 공약은 여전히 ‘선별적 복지’ 차원에 머문다.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일정한 금액을’이란 기본소득의 취지에선 다소 벗어나 있다. 이에 대해 이 시장은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선별 복지”에 가깝지만 취약계층 등을 중심으로 한 “선별 방식이 조금 독특하단 점”이 이재명식 복지정책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소득의 경우 “전 국민에게 (조세) 부담을 지우면 반발이 크니까, 국토보유세를 걷어 토지배당을 하는 방식”을 도입하는 게 골격이다. 재원 마련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상상력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민주당 TV토론에선 맹렬하게 기본소득의 ‘재원’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다. 문재인 후보는 이재명식 복지정책에 필요한 예산 43조원의 현실성을 묻는다. “국방비 예산보다 많은 금액”인데 “복지 강화에 동의하더라도 일률적으로 국민 1인당 얼마씩 주는 것은 감당하기 어렵다”는 비판이다.
안희정 후보의 비판은 좀더 공격적이다. 안 후보는 “복지가 공짜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기본소득 정책을 시행하는 데 드는 43조원을 더 시급하게 써야 할 사회 영역이 있다”고 말한다. 두 후보 모두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회·복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기본소득보다 더 시급한 것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이재명 시장은 기본소득이 복지 문제를 넘어선다고 맞선다. “(기본소득을 통한) 복지 확대는 경제성장의 동력”이고 “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지역화폐 지급을 통한 이재명식 지역경제 순환 모델은 요 며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가장 뜨거운 논쟁 중 하나다(그림 참조).
논란이 된 그림은 이재명 시장이 <한겨레21> 인터뷰에서도 설명했던 내용이다. 이 시장은 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방안에 대해 “저축이 불가능해, 전부 자영업 매출이 된다”며 “죽어가는 경제를 살리는 링거 구실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개인 페이스북 등에서도 “지역상품권으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반드시 우리 동네 가게에서 ‘소비’할 때만 그 가치가 주어진다”면서 “기본소득은 우리에게 ‘소비’를 권장한다. 이처럼 국민의 가처분소득이 늘면 경제는 반드시 되살아난다”고 강조해왔다.
이 시장 쪽의 이런 설명은 경제학의 기본 이론을 오독했거나 “여러 가지를 너무 섞어 무엇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페이스북 필명 ‘경박’이 올린 이재명 시장의 기본소득과 지역화폐 결합론에 대한 비판적 게시물은 이 시간 현재 433개 ‘좋아요’, 222회 ‘공유’, 60여 개 댓글을 받으며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한국SG(소시에테제네랄)증권 이코노미스트 오석태 박사 역시 개인 페이스북을 통해 이재명식 기본소득 개념은 “금융기관에 대한 구제금융, 즉 금융위기시 유동성 지원 대출을 설명하는 쪽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변방의 행정’에서 ‘세계의 시대정신’으로
기본소득을 둘러싼 여러 논쟁이 있다. 이재명 시장도 인정하듯 그의 기본소득론은 ‘완전한 기본소득론’이 아닌 ‘부분적 기본소득론’이다. 선택적,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가겠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효과를 설명할 때 종종 과용을 부리기도 한다. 최근 이재명 시장 지지를 선언한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역시 “기본소득-지역화폐 정책/개념에 대해 지지하지만 거시적으로 두 정책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건, 절대 절대 절대 반대한다”고 했다.
선거의 기본은 상대 후보를 나의 의제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내가 만든 판에서 내가 주도할 수 있는 이슈를 두고 공방을 벌이는 것은 굵직한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이다. 이재명 시장은 다소 싱거워 보이는 이번 대선에서 기본소득으로 그 쟁점을 선취해내고 있다.
지난 2월19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정책을 소개하는 특집 기사를 내보냈다. 기본소득을 좌우 가릴 것 없는 ‘시대정신’(zeitgeist)이라고 규정한 <가디언>은 이재명 시장을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 전 미국 노동부 장관 로버트 라이시, 프랑스 사회당 대선 후보 브누아 아몽과 함께 세계적 기본소득 주창자로 꼽았다. ‘변방의 행정’에서 ‘세계의 시대정신’으로. 이재명의 기본소득이 뜨겁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201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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