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 발효 후 대EU 적자 심화… FTA 활용 전략 마련 시급
▎지난 3월1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한·미 FTA 발효 5주년 기념 세미나가 열렸다. 왼쪽부터 김종훈 한미 FTA 한국 측 수석대표, 웬디 커틀러 한미 FTA 미국 측 수석대표, 제프리 존스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전 회장.
그야말로 ‘장밋빛 전망’에 불과했다. 2011년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 EU로의 수출은 줄고 수입이 늘면서 대EU 무역수지가 흑자에서 적자로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로 발효 5년이 된 한·미 FTA를 두고도 정부는 “글로벌 불황에도 대미 수출은 늘고 무역흑자도 2배 수준으로 증가했다”고 발표했지만 성과는 대부분 비수혜 품목에서 나왔다. 2015년 11월 체결한 한·중 FTA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등으로 한·중 관계가 얼어붙으면서 무용지물 상태다. FTA가 기대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속속 나오고 있다.
FTA 재협상 논의도 나라 안팎에서 불거지고 있다. 우선 미국 트럼프 정부가 무역수지 적자 통계를 앞세워 “한·미 FTA 이후의 교역 변화는 미국인이 원한 결과가 아니다”라며 재협상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통상규제의 칼날도 빼 들었다. 중국의 사드 보복도 여전하다. 통관·검역절차 강화, 세무조사 등으로 확대되며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이참에 FTA에 대한 재협상, 협정 준수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FTA의 성과만 강조할 게 아니라 기대에 못 미친 분야, 놓친 부분에 대해 공론화하고 ‘맞불’을 놓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EU FTA, 수입 늘고 고용창출 미미
이런 와중에, 지난 3일 공개된 정부의 용역보고서 하나가 산업계에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2011년 7월 한·EU FTA 발효 이후 애초 기대와 달리 국내 산업계 수출과 일자리 창출 등에서 큰 손해를 보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주해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농촌경제연구원이 수행한 ‘한·EU FTA 이행상황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EU 수출은 협정 이전인 2010년 537억 달러에서 2015년 481억 달러로 줄어 연평균 3.9%씩 감소했다. 이는 같은 기간 한국의 총 수출액 감소율 1.1%의 4배에 가깝다.
반면 수입은 크게 늘었다. 2010년 388억 달러였던 대EU 수입은 2015년 572억 달러로 늘어 연평균 증가율이 4.8%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한국의 총수입이 4.8%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이 때문에 대EU 무역수지 적자 규모도 커졌다. 2007년 무역상대국 중 최대 규모인 194억1000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지만 2012년엔 7억3000만 달러 적자 전환, 2014년에는 100억8000만 달러로 적자가 확대됐다. 보고서는 “서유럽국가와의 무역수지 적자가 만성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는 한·EU FTA 발효 당시 정부가 발표한 장밋빛 전망과 크게 배치된다. 당시 국책연구기관은 연평균 수출이 25억3000만 달러, 수입이 21억7000만 달러 늘어 평균 3억6000만 달러의 무역 흑자를 예상했다. 특히 자동차 등 주력 수출품의 수출 증가를 전망했지만 자동차 분야에서 적자 폭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농축수산업 수입액 역시 5년간 5070만 달러로 예상했으나 9억880만 달러로 늘어 무려 18배 차이가 났다.
일자리 창출 효과 역시 미미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EU FTA 발효 후 5년간 국내에는 9983개의 일자리가 생겼다. 서비스업에서 1만5255개가 늘었지만 농축수산식품업은 3232개, 제조업은 2011개가 사라졌다. 이는 정부 전망치의 절반도 안 되는 수치다. 정부는 단기적(0~5년)으로 3만 개, 장기적(10~15년)으로는 25만 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내다봤다. 보고서는 “기대와 달리 수출이 줄고 무역수지 적자가 확대된 것은 예상치 못한 유럽의 경기침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를 공개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장인 송기호 변호사는 “정부가 각종 FTA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효과와 전망이란 게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주장했다.
발효 1년 한·중 FTA는 무용지물
지난 3월로 협정 체결 5년을 맞은 한·미 FTA에 대한 평가도 크게 엇갈린다. 지난달 14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5년간 한국의 전체 교역은 연평균 3.5% 줄어든 데 비해 대미 교역은 한·미 FTA 덕분에 1.7% 늘었다”고 밝혔다. 특히 승용차는 한·미 FTA 발효의 최고 수혜 품목으로, 한국의 대미 승용차 수출은 지난 5년간 연평균 12.4% 늘었다는 발표였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통계의 착시 효과에 불과할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15일 국회에서 열린 ‘한·미 FTA 발효 5년 쟁점과 과제’ 세미나에 발제자로 나선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2014년만 봐도 한·미 FTA 혜택 품목 수출은 전년 대비 4.3% 늘어난 반면, 비혜택 품목의 경우에는 19% 급증했다”며 “대미 수출 증가가 한·미 FTA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실제로 자동차를 보면 미국에 수출할 때 붙는 관세(2.5%)는 FTA 4년째인 2015년까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2016년 비로소 관세가 철폐됐지만,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태풍 등의 영향으로 2015년보다 오히려 11% 줄었다. 특히 FTA 발효 후 5년 동안 대미 수출액은 연평균 92억 달러가량 증가했는데 이 중 자동차 분야가 연평균 55억 달러에 달했다. 즉 한·미 FTA가 발효된 뒤 대미 수출 증가액 가운데 최소한 60%가 FTA와 관계없이 거둔 성과라는 애기다.
지난 2015년 12월 20일 발효된 한·중 FTA는 1년이 지났지만 중국의 사드 보복과 비관세 장벽으로 인해 성적표가 초라하다. 애초 낮은 수준에서 타결된 협정이어서 교역증대 효과가 높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최근 사드 배치 등을 둘러싸고 한·중 관계가 얼어붙고 중국 측이 비관세장벽을 높이면서 농수산식품을 제외하면 수혜 품목들이 거의 없어 오히려 전체 대(對)중국 수출은 뒷걸음질 치는 상태다. 일부에선 ‘무용지물’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해 대중국 수출액은 반도체·휴대폰 등 13대 주력 품목의 수출부진으로 12%, 약 137억 달러가 줄었다. 과거 한국이 맺은 주요 FTA 1년차 성과(직전연도 대비 수출 증가율)는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29.8%, 미국 4.1%, EU 4.1%, 인도 42.7% 등으로 한·중 FTA에 비해 월등했다. 중국이 93%에 가깝게 개방한 농수산품에서만 일부 성과가 나왔을 정도다. 반면 FTA 발효 이후 중국의 무역장벽은 더 높아졌다. 중국의 한국에 대한 수입규제는 지난해 13건으로 전년보다 두 건 더 늘었다.
한국이 처한 전 세계 비관세장벽(48건) 가운데 절반 이상(26건)이 중국이다. 중국은 사드 문제가 불거진 후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반덤핑관세 조사 등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엔 관광이나 한류를 겨냥한 공세가 거세다. 한·중 FTA의 일부인 관광·영화·드라마 등의 교류·협력 조항들을 아예 무시하는 행태로, 구속력 있는 국제법인 FTA에 명백히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뒤늦게 중국의 사드 보복이 세계무역기구(WTO)·FTA 등 규범에 위배되는지 따져보고 대응하겠다고 나선 상황이이다.
하지만 양국 간 교역 증진을 목적으로 한 FTA 체결은 글로벌 경제의 대세이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특히 한국과 같이 수출의존도가 높은 산업 구조에선 다양한 FTA 체결과 활용이 중요하다. 실제로 지난 3월말 영국 경제분석기관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한국이 각종 악재에도 꾸준히 수출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는 것은 글로벌 공급망을 갖춘 대기업과 다양한 FTA 덕분”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주요 교역 상대국이 겹치고 경쟁 품목이 많은 한국과 대만을 비교해 한국의 수출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양국의 수출경합도는 0.67이다. 수출경합도가 1이면 양국 기업의 수출 품목이 완전히 겹친다는 뜻이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한국은 미국·EU·중국 등 수출의존도가 높은 무역 상대국과 FTA를 체결한 것이 효과를 보았다고 평가했다. 반면 미국·EU 등과 FTA를 맺지 않은 대만의 상품 수출액은 지난해 1.7% 줄었다.
향후 FTA 체결 국가는 더 늘 것으로 보인다. 우선 최근 본격적인 EU 탈퇴 협상에 들어간 영국이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한·EU FTA에 따라 누리던 무관세 혜택이 사라지게 된다. 최근 숀 블레이클리 주한 영국 상공회의소 대표는 “이미 한·영 FTA 체결을 위한 초기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국 소비자들이 동아시아 지역의 소비자 트렌드를 이끄는 경향이 있어 영국 프리미엄 브랜드의 전략적 요충지”라고 말했다. 최근엔 일본과의 FTA를 체결해 보호무역주의를 돌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FTA 효과에 대한 각 나라의 ‘셈법’이 서로 다른 가운데 이를 100% 활용하기 위해서는 차기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미국의 재협상 압력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 FTA를 ‘미국 일자리를 죽이는 재앙’이라 공격하며 재협상 으름장을 놓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새정부 출범 이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대한 재협상 방침을 공식화했고 이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도 선언한 바 있다.
일자리·부가가치 창출에 무게 둬야
▎한·미, 한·EU, 한·중 FTA의 성과가 기대 이하라는 평가가 나온다. 컨테이너 전용부두인 부산 신항만에 수출용 컨테이너들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한·미 FTA 재협상의 방향이 미국에 유리한 쪽으로 강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미 미국은 한국에 대한 통상 규제의 칼날도 빼들었다. 지난 1~2월 한국산 화학제품인 가소제와 합성고무에 대해 잇달아 예비관세 부과를 결정하고 3월에도 현대중공업 변압기에 대해 61%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산업계에선 미국이 ‘한·미 FTA 재협상’ 압박을 통해 ‘수입규제 강화’의 통상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송기호 변호사는 “반덤핑 장벽도 중요한 이슈”라며 “정부가 한·미 FTA 체결로 반덤핑 장벽을 낮추는 목표를 달성했다고 홍보했지만, 한·미 FTA 발효 후 오히려 미국의 반덤핑 조치가 늘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장밋빛’ 평가보다는 재협상 가능성을 고려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미 FTA의 성과만 강조할 게 아니라 자국의 이익 증진을 위한 미국에 대응 논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FTA 성과를 단순 제품 수출 증대가 아니라 국내 산업구조 개혁에 두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양희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그동안 협정의 효과를 수출 증대로 좁혀서 강조하던 것에서 벗어나 국내 일자리와 부가가치 창출에 좀 더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 1380호 (2017.04.17)
원글은 중앙시사매거진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원글보기_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