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교육강좌후기] 4차산업혁명 시대에 읽는 로버트 오언 – 강연자 홍기빈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2017년 조합원 특별교육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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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혁명 시대에 읽는 로버트 오언”

4월13일 목요일 저녁 홍대 가톨릭청년회관에서

많은 분들의 참여와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기대한 대로 홍기빈 선생님께서는 로버트 오언의 생애와 의미에 대해

거침없는 역사적 서사의 전개와 입담으로 흥미진진한 두 시간을 채워주셨는데요.

200년 전의 인물이지만 사회혁신의 아버지이자 협동조합의 창시자에 이르기까지

젊은 시절의 오언의 남다른 생각과 행보에서 현재의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문제점과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고민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날 강연의 텍스트인 로버트 오언의 평전을

(G.D.H. 콜(George Douglas Howard Cole)저, 홍기빈 역)

읽으면서 어려웠던 점은 배경이 되는 영국사와 서구사상사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과,

오언의 행적들이 너무나 역동적이고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어 다소 정리가 되지 않았던 것이었는데

강연을 통해 중요한 맥락들을 선명하게 짚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하신 분들은 다시 강연내용을 상기해보실 수 있고 미처 참가하지 못하신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강연 내용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 로버트 오언(Robert Owen, 1771.5.14~1858.11.17)은 어떻게 사회혁신운동의 창시자가 되었을까?

오언과 그 사상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산업혁명 전과 후의 생산과 소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18세기 이전의 생산과 소비는 주로 정해진 방식의 자연적인 살림살이의 삶에 대한 것이었고 주로 군사기술의 발달 외에 새로운 방식의 생산과 소비는 배척당했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생산과 소비는 인위적으로 조직되고 기술혁신이란 이름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한다. 기술혁신은 항상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원하는가에 따라 좌우되는데 군사기술을 추동하는 지배자들이 있어 기술혁신을 주도해 왔듯이 자본주의와 함께 막대한 수익을 축적하려는 자본가들이 등장하면서 기술혁신의 계기가 마련된다.

특히 영국의 산업혁명과 기술혁신에 불을 붙인 것은 면화산업의 등장이다. 인도로부터 모직물 수입을 금지하면서 영국 내 면화산업으로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열리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기술혁신에 필요한 자본가들의 투자와 새로운 발명이 줄을 잇고  대량생산에 따른 인력 고용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처럼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발전은 불가분으로 엮여 시작된 것이었다.

18세기 이전에는 정해진 방식 이외의 재밌고 새롭고 좋은 물건을 원하거나 소비하는 것은 금기시, 죄악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산업사회가 등장하면서 사람이 어떻게 생산하느냐뿐 아니라 사람이 무엇을 소비하고 욕구할 것인가를 포괄해 기술혁신 및 생산이 일어난다. 이러한 변화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20세기 중반에는 소비가 하나의 미덕이 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급속한 변화에서 중요한 문제점은 이 산업사회를 충족시키기 위한 지배적인 논리가 기계적(공학적) 합리성(효율성)과 자본가(투자자)의 채산성(이윤률)에 맞춰지게 된다는 점이다. 이 두가지가 모두 맞아야만 기술혁신이 벌어지고 산업사회는 발전한다. 반면, 이 중 하나라도 맞지 않으면 산업사회에서는 가차없이 구조조정 되어버린다. 그 결과 필연적으로 인간과 자연과 사회는 상품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폴라니의 아주 중요한 명제이기도 하다.

산업혁명에서 생산의 주역은 기계가 되었고 기계를 굴리는 자본가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이윤이 되었기에 인간과 자연은 생산과정의 투입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과 자연과 사회는 채산성도 맞추고 기계적 효율성에 순응하고 수동적으로 맞춰야하는 상품가치로서의 존재가 된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한편으로는 엄청난 풍요를 만들어내지만 한편으로 사람과 자연은 역사상 가장 급속하게 황폐화되고 궁핍화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기술혁신 산업사회의 풍요가 도덕과 자유를 갖춘 존재로서의 인간의 모습과 양립하게 만드는 사회는 가능할 것인가?

이것을 꿈꾸기 시작한 것이 초기 사회주의자들이다.


초기 사회주의자들의 발상

이들은 산업혁명의 풍요와 비극을 모두 목도하고 산업의 조직을 자본주의의 원리 즉 채산성을 쫓아서 영리사업을 한다는 원리와 분리시켜서 다른 원리와 결합시킬 수만 있다면 인간이 도덕과 자유를 갖춘 존재로서의 위엄을 유지하면서도 기계생산의 효율성을 갖출 수 있다고 보았다.  지금 4차산업혁명이 떠오르는 시대에 이러한 ‘산업기술의 발전과 도덕과 자유를 갖춘 인간이 양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초기 사회주의자들의 이상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초기 사회주의자 중에 (참고해야 할) 생시몽(Saint-Simon,1760~1825)은 산업이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이다. (Industrie/영Inderstry)라고 하는 말은 원래 산업과는 관계없는 ‘근면’이란 뜻이다. 1810년대 생 시몽은 사회의 실체는 산업이라고 주장한다. 이전에는 사람들은 사회의 실체를 국가와 정치라고 생각했다.  프랑스혁명 전의 인간사회는 왕권중심의 계급구조로 생각해왔지만 생시몽이 보기에 사회의 실체는 실제로 생산과 분배와 소비를 조직하는 것이 사회의 실체이고 그것이 산업이라고 얘기한 최초의 사람이다.

이것은 그 당시 매우 혁명적인 생각이었다. 더이상 근면이 아닌 사회의 실체라는 뜻으로 Industrie를 쓰자고 하면서 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자(정치가, 귀족)들은 모두 제외하고 산업을 실질적으로 조직하는 사람들을 추려 사회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한다.

그 두 집단이란 지식인들과 산업가들이다. 지식인들은 과학자, 예술가, 작가인데 산업사회의 정신적 세계를 창조하는 것은 이들이고, 그리고 실제로 산업을 수행하고 조직하는 산업가들로 엔지니어 노동자 혁신기업가들이 있다. 생 시몽 이 두집단들이 만나 어떻게 사회를 조직할 지 모두 결정하자는 급진적인 주장을 펼친다.

생 시몽이 말하는 산업사회의 새롭고 합리적인 방식은 모두 과학에 의거해 기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회과학을 연구해야하고 시장경제에 내맡기지 말고 수학자들을 통해 생산을 조직해야 하며 사회전체를 매우 합리적이고 안전하고 누구도 굶거나 불행하지 않은 이상적인 하나의 거대한 공장으로 재편하자고 주장 한다.

한편 생애 말년 1820년대 생 시몽은 ‘새로운 기독교’라는 유작(Le Nouveau Christianisme (The New Christianity) (1825))에서 서로를 사랑하라는 진정한 기독교의 가르침으로 돌아간 감정적 정서적 연대와 유대만이 산업사회를 구원한다고 얘기한다.

결론적으로 생 시몽은 두가지 병렬적인 원칙과 주장을 이야기한다. 하나는 엔지니어 과학자들이 모여 가장 안전하고 깨끗하고 훌륭하게 생산과 소비를 과학적으로 조직하고 노동자들이 거기에 모두 순응하라(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아무도 불행한 사람이 없도록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시몽의 독창적인 사상은 선구적이지만 어딘가 무서운 느낌마저 든다.


산업혁명시대의 청년, 오언

학자였던 생 시몽과 달리 오언은 공장경영자였다. 오언은 영국에서 5번째 안에드는 큰 규모의 뉴래너크 면화공장의 CEO였다. 몇천명의 노동자들을 필요로하는 당시로서는 대규모 공장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노동자들을 모집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노동환경은 너무나 열악하고 비인간적이며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정말 굶어죽게 된 사람이 아니면 결코 공장에 들어오지 않으려했고 들어온다해도 끔찍한 환경속에서 술이나 범죄에 빠지는 등 망가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오언은 산업혁명의 상품으로 전락한 인간이 어떤 모습인지를 눈앞에서 목격했던 것이다.

이 당시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아동노동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아동노동에 동원된 아이들 중에 3살짜리도 있었다고 하며 10살 이하의 아이들이 수두룩했다.  아이들은 성인 노동자와 같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무조건 순응하기 때문에 공장주 입장에서 노동 인력으로 매우 선호되었다.

10살 이하의 어린이들이 공장에 와서 저능한 상태로 망가지는 것은 로버트 오언이 가장 가슴아프게 생각한 것이었다. 여기서 로버트 오언은 공장이 이러해야만 하는가란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다. 여기서 독특하고 진보적이었던 오언의 생각은 인간의 인격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보편적으로 흔한 이러 발상이 매우 독특한 것이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당시 지배적이었던 기독교의 영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오언은 기독교를 굉장히 싫어했는데 기독교는 인간의 모든 행동과 운명과 책임을 개인의 영성에 돌리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언은 당시 팽배했던 기독교적 관념을 거부하고 삶과 사람에 대한 그만의 끊임없는 관찰과 경험, 독학에 따른 자신의 견해로서 인간을 이해한다.

“인간의 성격은 연약하고 변형되기 쉬우며 12살까지 형성되는데 그 때 어떤 환경이 주어지고 어떤 훈련과 교육을 받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훌륭한 사회가 되려면 적어도 12살까지는 아이들을 잘 보살펴야만 한다고 보았다.

오언의 눈에 노동자을 둘러싼 환경은 악순환이었다. 노동자들을 상품으로 만들고 취급하는 환경에서 짐승과 다름없이 전락한 노동자들은 상품 또는 짐승이상의 일은 할 수도 없고 하려하지도 않는 단순 저항만 늘어난다. 오언은 이 악순환의 고리를 깨고자 한다.  인간의 성격은 얼마든지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상품이 아닌 인간으로 대하자며 노동시간을 파격적으로 줄인다. 그 당시 평균노동시간은 14시간정도 였는데 8시간까지 줄이고자 했으나 9시간까지 줄인다.

그는 노동자들이 살 수 있는 집을 지어주고 마을을 조성하며 마을엔 화단을 만들고  서로 돌아가면서 청소를 하도록 하고  도서관을 만들었으며 글자를 가르쳤다. 임금을 올리지는 않았으나 그들 자신이 인간임을 실감하고 성장할 수 있는 인간다운 삶의 환경을 조성해주는데 아낌없이 투자했다. 그 결과 동업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하지만 뉴래너크 공장의 생산성은 엄청나게 올라간다. 10살이하 아동들은 모두 집에 돌려보내고 돌아갈 집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그 아이들이 즐겁게 배우고 뛰어놀 수 있는 어린이집을 만든다. (유치원의 기원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로 추정된다고 함.)어른들은 일만하지 않고 저녁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며 발레를 가르치기도 한다.

노동자들은 처음엔 로버트 오언을 의심했으나 이후에 오언을 이해하게되고 전적으로 추종하게 된다.  오언의 첫 혁신이란 산업혁명이 가져오는 생산의 합리성과 효율성 도덕과 자유를 가진 존재로서 인간이 모순될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서로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과감하게 실현해 성공시킨 것이다.

뉴래너크 공장은 경제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면서도 다른 공장들과 달리 노동자들이 망가지지 않았다. 뉴래너크의 사례를 직접 보고 배우기 위해 유럽 전역에서 학자, 귀족, 지배자들을 비롯한 견학단이 몰려 오기도 했다.


오언의 계속된 실험

오언이 말한 인격 형성의 원리는 한마디로 사람으로 대하면 사람이 되고 짐승으로 대하면 짐승이 된다는 것이다. 오언이 보기에 영국과 유럽은 선순환이 아닌 악순환으로 가고 있다고 보았다. 사회변혁에 중요한 것은 선순환 혹은 악순환으로 갈 것이냐의 기로에 있고 여기서 정부가 움직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회전체에 제안하는 바 인간을 더이상 상품이나 짐승으로 대하지 말고 뉴래너크에서 본 것처럼 선순환 구조로 사람을 몰고 가는 환경을 조성하면 거기서 사회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인간이 선순환 구조로 들어가면 협동하는 본능이 나오기 시작한다. 누가 명령하거나 위협하지 않아도 사람들 스스로 서로의 마음과 심정과 욕구와 능력을 관찰하고 이해해서 서로가 힘을 합쳐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원리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일단 선순환이라는 구조로 들어가게 되면 사람들 스스로 협동을 해서 그들 스스로 산업사회를 조직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를 적용한 협동마을(village of coorperation) 공동체를 만드는 것으로 두번째 실험이 시작된다. 전쟁 이 후 실업자들에 고민하던 정부가 시행하던 스피넘랜드(speenhamland system)라는 구빈법 대신 오언이 제안한 것은 정부의 기금을 기초로 하여 실업자들을 모아 자급자족을 하는 공동체를 목표로 1450명 단위의 마을을 조성해 그들이 스스로 생산, 수익을 조직하여 정부가 제공한 자본의 이자를 갚아나가도록 하는 것이었다.

영국의 많은 지배계급들이 이에 관심을 갖는 듯 했고 오언은 영국 의회에 적극 의견을 제출하기도 하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언은 자신의 힘으로 직접 실현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대부분의 오언 자신의 재산을 투자해 미국에 뉴하모니라는 공동체를 건설하는데 이 역시 실패한다.

이 당시 오언의 혁신 활동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민중 중심의 정치적 운동이 아니라 지배계층을 찾아가 자신의 실험 모델에 대해 설득하고 지원을 얻으려는 방식이었다. 한편, 오언이 미국에 있는 동안 영국에서는 노동자들이 오언의 책자를 바탕으로 세미나를 열기시작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노동자들은 오언의 생각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들이 협동을 할 수만 있다면 자본가들이 없이도 공장을 돌릴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스스로 협동 공동체를 조직하기 위해서는 기초 자금이 필요하는데 그것이 부족하자 그들 스스로 소규모로라도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직접 만들어 사고 팔수 있는 소비자 협동조합부터 시작하게 된다. 이들에게는 협동조합 운동을 하고 있다는 의식은 전혀 없었고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다. 이들에게 소비자 협동조합은 이에 보조적으로 생활비를 모으는 수단으로 작은 자본이라도 공동체 내부에서 순환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1820년대 오언이 영국에 돌아왔을 때 오언은 소비자 협동조합에서는 전혀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으나 자신이 영국 노동자들 사이에 영웅이 되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1832년 ‘공정 노동 교환소 (National Equitable Labour Exchange)’라는 또 다른 실험을 기획한다. 협동의 원리를 실업자들의 상황에 적용하여 일할 능력과 의지도 있는 사람들의 노동력이란 자본이 활용되지 않고 있을 것이 아니라 각자 만들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 공장 노동 교환소라는 거대한 거점(창고)에 모여 그 물건에 들어간 노동시간을 평가하여 그 만큼의 노동교환권을 티켓으로 발행해 필요한 물건과 교환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자본가들에 의해 결정되는 매우 불안정하고 믿을 수 없는 화폐라는 계산 단위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한 점이다. 협동을 하는 사람들은 협동 구성원들이 똑같이 납득할 수 있는 독자적인 회계단위를 사용해야하는데 그것이 노동시간이란 아이디어였던 것이다. 그러나 노동시간을 평가한다는 것의 어려움에서 공정노동교환소 역시 얼마안가 실패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오언의 가장 거대한 실험은 1832년 전국 단위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오언의 아이디어는 여러 직종 단위의 조합들이 산별로만 존재할 것이 아니라 어느 지역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일반적인 노조의 성격을 가지며 전국단위로 뭉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최초의 전국단위 노동조합 (노동조합 총평의회 Grand Council of the Union)이었다.

이 노조의 목표는 자본가들에게 자본주의 시스템을 그만두고 모든 사람들이 협동의 방식으로 산업을 조직하도록 설득하고 만약 설득이 되지 않은 때에는 총파업을 해서 노동자들이 원하는 방식을 관철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오언은 왜 전국단위의 노동자조합을 중시했는가?  오언이 강조한 노동조합의 존재의 이유는 “자본과의 투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스스로 살아가기 위한 것이다” 라는 점이었다.

따라서 오언은 소비자협동조합보다 ‘생산자 협동조합’을 훨씬 더 중요시했다. 오언은 노동자들이 개별적인 산별 노조로 흩어질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산업을 조직하고 생산활동을 해야한다는 점을 가장 강조한다. 실업자들이 모여 작업장을 따로 만들자. 그리고 다른 직종의 노조들과 생산역량을 맞교환하고 노조 스스로 생산활동을 활성화시켜서 노동자들과 전국 노조가 스스로 산업활동의 주체가 되고 노동이 스스로 산업을 조직하는 독자적인 왕국을 만들자라는 것이었다. 즉, 전국 노동조합의 궁극적인 목표는 노동자들이 자본가의 비지니스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산업을 조직할 수 있고 그래야만한다는 것이었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로버트 오언은 어떤 시사점을 남기는가?
(홍기빈 선생님의 시사점)

1.  4차산업혁명에 실질적으로 맞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아이들을 키워내야 한다.

2.  젊은이들의 교육과 복지에 대해 제대로 된 지원이 필요하다.

배울 수 있을만큼 배우고 시도해볼 만큼 해볼 수 있도록 해야한다. 오언이 강조했듯이 교육과 복지는 산업사회의 효율성을 담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프라스트럭처다.

3. 오언의 공동체 운동은 커먼즈 무브먼트(commons movement)로 이어져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이른바 플랫폼 경제에서 비지니스의 도구가 되느냐 아니면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공유경제가 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커먼즈 무브먼트는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을 사적 소유를 넘어서 전체의 공적 소유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끌어모으고 살려서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P2P Foundation과 같은 무형자산에 대한 공유지 운동, 오픈소스 프로젝트의 수경재배 같은 예들이 오언의 공동체 운동의 계보를 잇는다. 4차산업혁명의 플랫폼이란 것을 매개로 이러한 사회혁신들은 아주 새로운 형태로 연결될 수 있다.

4. 사회적 회계단위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오히려 막스의 노동가치론 보다도  오언의 노동가치론이 훨씬 더 놀랍고 탁월한 것이다. 오언은 단지 지적 유희로서의 주장들이 아닌 실제로 노동자들의 생활을 조직해보려 한 것이다.

주부들의 노동처럼 화폐로는 도저히 평가할 수 없는 일하는 보통사람들의 노력이란 것이 존재한다.  이런 것은 별도의 평가기준을 만들어 별도의 회계를 짜야한다.  화폐만이 사물의 가치를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 쓰이는 회계 시스템은 따로 있다. 이러한 회계방식이 사회전체에서는 왜 불가능한가?

미술가들의 그림이 50만원으로 정해져 있다고 해서 그 돈을 지불하고 가져오면 그만인걸까? 그 미술가들의 땀과 노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너무 큰 이야기지만 사회적 경제와 노동운동이 다시 결합했으면한다. 노동자라는 사람은 생산현장에서 당하는 고통이 있기에 노동조합을 만들고 소비자는 소비자로서 당하는 고통이 있어 소비자 협동조합을 만든다. 전 국민 모두가 가입하는 노동조합 겸 사회적 경제를 만들어 오언이 꿈꿨던 것처럼 크게 다시 뭉쳐 볼 수는 없을까?

사회적 경제를 기능적인 측면에서만 보지 말고 이걸 계기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돌볼 수 있는 좀 더 크고 아주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여러 조직이 생겨날 수 있는 혁신의 장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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