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에서 4차 산업혁명이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지만, 지금 대선 후보들의 공약 속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1960년대를 풍미했던 저 낡은 ‘산업 입국론’의 재탕 삼탕일 뿐이다. 압도적인 물량의 고정 자본을 형성하고 선진적인 생산 기술을 도입하여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1980년대까지는 산업 정책 등을 앞세운 국가 주도의 틀이 불가피하다고 여겨졌지만, 199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는 규제 철폐 등을 포함한 여러 자유화 조치로 민간의 영리 기업에 최대한의 재량권을 주는 것이 첩경이라는 식의 사고틀이 지배하고 있다.
문재인 후보는 대통령 직속의 ‘4차 산업혁명 국가위원회’를 신설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안철수 후보는 이러한 국가 주도의 방식을 비판하면서 대신 민간의 영리 기업들에 최대한의 재량과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을 내걸었다. ‘국가냐 시장이냐’는 해묵은 산업시대 논쟁틀의 재판일 뿐, 정작 핵심어가 되어야 할 ‘사회’ 그리고 ‘사회 혁신’은 찾을 수가 없다.
지금 한국 사회와 이번 선거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담론은 새로운 미래를 담고 있는 현상을 케케묵은 과거의 틀로 보고 있는 셈이다.
K-알파고를 개발하고 ‘3D’ 프린터를 곳곳에 도입하고 ‘스티브 잡스·일론 머스크 10만 양병설’ 따위를 외치면 경쟁력있는 산업 국가가 건설될 것이라는 생각은 1960년대 박정희 시절, 아니 19세기 일본 메이지 시절에나 통했을 이야기이다. 4차 산업혁명은 좁은 의미의 생산 설비 및 기술의 변화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욱 중요한 열쇠는 사회의 변화에 있다는 것이 많은 관찰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바이다.
인공지능에서 드론을 거쳐 빅데이터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기술의 요소들은 많지만, 이것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인간과 사회의 새로운 필요 욕구는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포착하여 기술 혁신과 연결시킬 것인가의 고리가 풀리지 않으면 이러한 새로운 기술 요소들은 투자와 스케일업으로 큰 가치를 창출하는 쪽으로 나갈 수가 없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의 선진적인 담론에서는 어떻게 ‘사회를 혁신’할 것인가가 핵심적인 중요성을 차지하게 된다. 그래서 개인과 집단이, 이웃과 사회가 스스로 품고 있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과 욕구를 적극적으로 표출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극히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우버나 에어비앤비와 같은 사례들을 보라. 알리바바가 진행하고 있는 농촌에서의 실험을 보라. 기술적 요소 이상으로 사회적 혁신의 요소가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 혁신이 활발히 벌어지고 이것이 다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산업 기술 도입의 역동성으로 연결되려면 전면적인 사회 개조가 필요하다.
각급 지자체와 중앙정부 차원에서 공공과 기업과 시민사회가 함께하는 ‘협치’의 방식을 새로이 해야 하며, 옛날 산업시대의 ‘엘리트’들을 길러내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는 교육 시스템을 전면 개혁해야 하며, 상명하복의 수직적 명령 체계로 되어 있는 기업과 각종 조직 문화를 유기적 수평적인 방식으로 개선해야 하며, 사람들이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이 새로운 산업 변화에 주역으로 뛰어들 수 있도록 복지(혹은 기본소득)와 교육을 강화하고, 노동 시간을 줄여 나가야 한다. 한마디로 사회를 더 ‘소프트’하게, 더 역동적으로, 더 수평적이고 민주적으로 고쳐 나가야 한다.
인간-사물-자연-사회가 전방위적으로 연결되는 ‘초연결성’이란 그때에 비로소 실현될 것이며, 현재의 여러 기술적 혁신에 잠재되어 있는 놀라운 생산성은 그때에 비로소 충분히 풀려나오게 될 것이다.
구체적인 모범이 필요하다면, 지난 몇 년간 박원순 서울시장의 서울시 및 그 산하 지자체에서 꾸준히 추진해 온 ‘사회 혁신’의 실험을 참조하기 바란다. 아직 시작 단계이지만 적지 않은 유의미한 성과를 축적하였고 국제적으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 글을 거의 다 쓴 시점에 신문을 보니 마침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서울시에서 일하던 인사들을 대거 영입하여 전국적 규모에서의 사회 혁신을 추동하기 위한 ‘더혁신’ 위원회를 발족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다른 캠프들에서도 더 이상 해묵은 ‘산업 입국론’의 틀에 갇히지 말고 이러한 ‘사회 혁신’의 관점에서 담론과 정책의 방향을 이렇게 전환할 것을 기대한다. ‘국가’도 ‘기업’도 아니다. 문제는 ‘사회’이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2017.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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