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핫이슈분석] 비주류 경제학, 새 정부 핵심경제철학됐나

 

소득주도성장론, 포스트케인지언 이론 바탕

김상조 공정위원장 후보자,

“하도급 거래, 사적자치 영역 아냐…규제 필요”

 

▲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을 일찍부터 소득주도성장론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국내에서 관련 논의가 시작된 것은 국제노동기구(ILO)가 2013년 비주류 경제학인 포스트케인지언 학파에 속하는 이들에게 의뢰해 작성한 ‘임금주도 성장’ 보고서가 계기였다. 청와대의 정책이 포스트케인지언 경제학에 영향을 받고 있는 이유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핵심 직위 인사가 진행되면서 비주류경제학이 국정 철학의 중심이 됐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가장 먼저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해 청와대 안팎에서 나온 발언들을 종합하면 영국 케임브리지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포스트케인지언(post-Keynesian)의 이론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경우 공정위의 업무 범위를 독과점 규제나 대주주의 사익 편취를 넘어서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하도급 거래 관행까지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의 양 대 축인 거시경제 운용과 대기업 정책 모두 비주류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22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출범식에서 김진표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은 사회경제 전반에 걸친 패러다임을 소득주도 성장으로 바꾸자고 주장해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대통령 인수위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기구다. 문 대통령은 21일 장하성 고려대 교수를 정책실장으로 선임한다고 발표하면서 장 신임 실장에 대해 “경제민주화와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할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소득주도성장론은 2014년 쯤부터 논의되기 시작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13년 ‘임금주도 성장: 개념, 이론, 정책(Wage-led Growth: Concept, theories, and policies)’ 보고서를 발간한 것이 계기였다. 본격적으로 민주당의 경제 관련 당론이 된 것은 문 대통령이 당 대표가 된 2015년부터다. 강기정 전 의원, 윤호중 의원 등 역대 정책위원장들은 여러 차례 “소득주도성장론은 새로운 경제 성장의 패러다임”이라는 글을 당 안팎에 발표했다.

 
 

“실질 임금 증가가 기업 투자 이끈다”

 

▲ 홍장표 부경대 교수가 제시한 소득주도성장의 기본 방향. /홍장표, <소득주도성장과 중소기업의 역할> 보고서
 
 
소득주도성장론은 조앤 로빈슨, 미하우 칼레츠키 등 영국 케임브리지대를 거점으로 활동한 포스트케인지언 학파의 임금주도 성장(wage-led growth)를 기반으로 한다. 포스트케인지언으로 분류되는 경제학자들은 스펙트럼이 넓지만,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경제는 수요결정적(demand-determined)이기 때문에 ‘유효수요’를 늘리는 게 경제성장의 관건이다. ▲장기에서는 생산성 등 공급요인이 중요하다고 보는 일반적인 케인즈주의와 달리 유효수요는 장기 경제 성과를 좌우한다. ▲기업 투자는 경제 내의 저축 규모와 독립적으로, 경영자나 기업의 의사결정에 의해 이뤄진다. 한마디로 경제가 수요주도적(demand-led)이기 때문에 실질임금이 상승하면 소비가 증가하고, 그 결과 노동수요가 증가해 실업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또 포스트케인지언들은 ‘시장 메커니즘’이 자율적으로 균형을 찾아가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바람직한 임금 및 투자 수준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 개입은 바람직하다.

2015년 민주당 외곽 싱크탱크 ‘더미래연구소’가 개최한 ‘포용적 성장과 소득주도성장론’ 토론회는 민주당 내 소득주도성장론이 포스트케인지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을 잘 보여준다. 이날 ‘소득주도성장과 정책과제’라는 주제로 기조 발표를 맡은 홍장표 부경대 교수는 “실질임금 증가가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가져왔다”는 실증 분석 결과를 내놨다. 홍 교수는 “소득분배 개선이 큰 폭의 소비 증가를 유발하며, 기업의 투자를 촉진한다”며 “자본친화적 분배정책에서 노동친화적 분배정책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후 이어진 정태인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주상영 건국대 교수, 온기운 숭실대 교수 등의 발표도 비슷한 논리였다. 대선 캠프 핵심 경제 브레인이었던 김유찬 홍익대 교수는 2015년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간하는 예산춘추에 ‘소득주도성장의 이론과 실천’이란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 김 교수는 “소국개방경제에서도 소득주도성장의 방법론은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임금 상승 및 법인세 증세도 기업 경쟁력에 큰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핫이슈분석] 비주류 경제학, 새 정부 핵심 경제철학됐나

 

장하성 정책실장은 소득주도성장을 명시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간 발표한 저서나 외부 강연에서 궤를 같이하는 발언을 꾸준히 해왔다. 2월 ‘2017 경제학 공동학술대회’ 기조강연에서 장 정책실장은 “국가의 소득재분배가 아니라 시장에서의 원천적 배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 정책실장은 이날 강연에서 “기업이 가계에 지급하는 임금, 이자, 배당 등 원천적 분배를 기업수익이 증가한 만큼 늘리지 않고 내부에 유보한 것이 가계소득 저성장의 핵심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장 정책실장은 소득, 고용형태, 대-중소기업 간 격차를 좁히기 위한 대안으로 기업의 초과 내부유보에 대한 과세 강화와 대기업 임금 인상의 일정 부분을 하청업체 임금 인상을 위한 재원 할당하는 방안을 내놨다.

 
 

◆ “하도급 회사-대기업 간 단체교섭제도 도입하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왼쪽에서 두 번째)가 17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후보자 임명 발표 직후 기자들과 질의응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왼쪽에서 두 번째)가 17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후보자 임명 발표 직후 기자들과 질의응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상조 공정위원장 후보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도 공정위가 규제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종횡무진 한국경제’ 등 그간 저술에서 김 후보자는 “한국의 중소 하도급기업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대·중소기업 간 거래 관계의 기본적인 불공정성을 치유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김 위원장은 “정부 역할이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을 통해 계약의 기본적인 공정성을 확보하는 데 머물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도급거래는 시장거래도 아니고 조직 내부 거래도 아닌, 그 중간의 준내부조직적 관계”이기 때문에 정부가 법률 등을 활용해 규제할 수 있다는 게 김 후보자의 논리다.

김 후보자는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이 서있는 근본 토대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공정위가 하도급 거래까지 담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독과점 행위에 초점이 맞춰진 기존 경제학과 다르다. 이를 의식해 김 후보자는 “경쟁법의 목적이 단순히 경쟁을 보호하는 것에 그친다는 주장은 미국에서 시카고학파가 주도권을 잡으면서 형성된, 역사적인 산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하도급 거래에서 중소기업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다수 중소기업들의 수평적인 공동사업을 활성화 시켜야 하며, 그것을 위해 공정거래법의 담합금지 규정에 대한 예외 인정이 필요하다”고 김 후보자는 주장했다. 노동조합처럼 하도급 업체가 대기업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또 “대기업의 하도급 거래 실태를 공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김 후보자는 제안했다.

 

 

2017. 05. 23

조귀동 기자 |  ca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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