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에서 찾는 21세기 사회혁신 키워드
※ 이 기사는 2017년 4월 13일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협동조합에서 주최한 조합원 특별 교육 강좌 <4차 산업혁명시대에 읽는 로버트 오언>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올해 출간된 사회적경제 서적 중 눈에 띄는 책은, 단연 <로버트 오언> 일 것이다. 2월 출간된 이 책은 ‘협동조합의 창시자’로 불리는 로버트 오언의 국내 첫 평전이다. 영국 사회주의 사상사 및 운동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G.D.H. 콜이 저술한 로버트 오언의 전기를 우리말로 옮겼다. 책을 출간한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협동조합에서는 지난 4월 13일 “4차 산업혁명시댕 읽는 로버트 오언”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열었다.
이미 피고 진 벚꽃이 무색하게 쌀쌀했던 봄날 저녁, 7시가 넘어가자 가톨릭청년회관 3층 바실리오 홀이 하나 둘 차기 시작했다. 퇴근 후 직장동료와 함께 온 사람, 우연한 만남에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 노트북을 꺼내는 학생들,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까지. 연령도 모습도 다양했지만 저마다 손에 든 책에서는 진중함과 기대가 엿보였다.
이날의 연사는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장이자 <로버트 오언>의 역자인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강연은 책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왜 이 구닥다리 책을 이 시기에 출간했는지 궁금해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국내에서 오언은 두 가지 맥락으로 알려져 있다. 80년대에 사회주의운동이 한창이던 때에 생시몽, 푸리에와 함께 공상적 사회주의자로 소개된 것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가 협동조합 운동과 관련해서이다. 최초의 성공한 협동조합으로 기억되는 영국의 로치데일을 시작한 사람들이 모두 오언주의자였기 때문에 오언은 자연스럽게 ‘협동조합의 사상적 아버지’로 알려졌다. 정작 오언은 협동조합 운동에 시큰둥했다고 하지만
이날 강연은 조금 더 시야를 넓혀 ‘사회혁신가’로서의 오언을 만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오언은 산업혁명 시대에 사람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협동마을을 시도하며, 어떻게 사회혁신을 만들어내는지를 처음으로 보여준 사람이다. 4차 산업으로 인해 실업과 불평등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책은 산업기계가 등장한 18세기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2017년인 지금의 풍경과 전혀 다르지 않다.
기술의 변화가 도래할 때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홍기빈 소장은 이런 맥락에서 중요한 인물이 로버트 오언이라고 강조했다.
“ 물론, 협동마을을 만들겠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방법은 다를지 몰라도 그 원리는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바로 협동(Co-operation)이에요. ”
기술혁신이 가져온 풍요와 재앙
생산과 소비의 방식이 바뀌고 기술혁신이 벌어지는 것이 산업시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혁명은 인간이 생산, 소비, 분배하는 방식을 가장 크게 바꿔놓은 사건이다. 산업혁명 이전의 생산 활동은 농업, 어업, 목축업과 같이 자연의 원리나 리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생활이었다. 그런데 산업혁명이 시작된 후로는 그 모든 것이 다 인위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하다못해 물고기를 잡는 방식 하나도 바뀌었다. 그리고 이 방식은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는데, 그것이 ‘기술혁신’이다. 한 가지 얄궂은 사실은 해고되는 노동자 외에는 기술혁신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
“ 폴더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바꾸면서 노키아 노동자들은 어떡하지 고민하신 분 있나요?
노키아 노동자들은 세상이 야속했을 거예요. 정말 야속했던 사람은 영국 광부들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어떡해요? 더 이상 석탄을 안 쓴다는데 말이죠. ”
하지만 사람들이 기술혁신을 언제나 반겼던 건 아니다. 18세기 이전에는 새로운 물건을 탐하거나 기술을 개발하면, 심하면 생매장을 당하기도 했다. 주로 발달된 기술은 군사기술뿐이었다. 그런데 20세기 중반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는 소비가 미덕이 되었다. 그걸 상징 하는 인물이 마릴린 먼로나 엘비스 브레슬리이다. 기술의 변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진 것. 왜냐면
“ 바로 자본주의 때문이죠. ”
한 마디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신기술을 발명하기 위해선 투자를 해야 하고,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기계를 구입해야 하고, 기계를 돌리려면 사람이 필요한데 자본가들 입장에서는 돈이 되지 않으면 굳이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누가 정말로 기술혁신을 원하고 주도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할 지점이 여기다. 뒤집어 말하면, 자본가들은 팔리지 않는 상품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사람의 욕망을 읽고 거기에 필요한 기술혁신을 한다.
산업혁명은 인간에게 축복인 동시에 재앙이다.
이런 산업혁명은 두 가지 논리가 중첩되어 작동하는데, 기계적 합리성과 채산성이 그것이다. 사람은 쉬지 않고 일을 시키면 죽지만 기계는 그렇지 않다(기계적 합리성과 효율성). 또한 이윤이 나지 않으면 자본가 입장에서는 투자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채산성) 이 두 가지가 맞물려야 기술혁신이 일어나고 산업사회가 발전한다. 생산의 주체는 기계고 자본가의 주요 관심사는 이윤이기 때문에 인간은 필요할 때 구입하고 버려지는 노동력 상품이 되어야 한다.
가령, 프랜차이즈 카페를 떠올려보자. 가령, 프랜차이즈 카페를 떠올려보자. 2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몸을 돌려가며 최대한 많은 음료를 만들 수 있도록 구조가 짜여있다. 모든 것이 매뉴얼화 되어 있는 데다,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정규직 바리스타를 고용할 필요가 없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가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욕구 덕에 우리는 풍요로운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역사상 인간이 가장 숨 막힌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산업혁명과 자본주의가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욕구 덕에
우리는 풍요로운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역사상 인간이 가장 숨 막힌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사회혁신가 로버트 오언
기술혁신이 가져다주는 풍요와 도덕과 자유를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 이 두 가지가 양립하는 사회가 가능할까?
그런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었다. 초기 사회주의자이다. 그들은 이윤을 추구하는 채산성의 원리를 분리시키면 인간의 존엄을 지키면서 동시에 기계의 효율성을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앞서 언급한 생시몽도 그중 하나였다. 생시몽은 사회의 실체를 산업(industry)이라고 보고 사회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공장처럼 과학에 기초해 생산과 분배를 조직하면 누구도 혹사당하지 않고 굶어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오언은 생시몽이 제기한 문제를 공장주로서 체감했다. 당시 오언은 뉴라나크(New Lanark)에 있는 면화공장 경영자였다. 공장은 고용인수로 봤을 때 영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만한 규모였다.
그 시대 공장경영에서 가장 골칫거리는 구인활동이었다. 공장노동이 혹독하기로 유명해 아무도 공장에서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전역을 다니며 인력을 구해올 수밖에 없는데, 각지에서 데려오기 때문에 오합지졸이 따로 없었다. 일이 고되기 때문에 툭하면 술 마시고 범죄를 저지르기 일쑤였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아동노동이었다. 아이들은 힘도 약하고, 술도 마시지 않고,임금을 덜 줘도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리가 용이하다는 것. 영국의 보고서를 보면 세 살짜리도 공장에서 청소를 했다. 어른들도 버티기 힘든 일을 감당하며 아이들은 숨 쉬는 것 외엔 아무 의미 없는, 짐승만도 못한 꼴이 되었다. 오언은 노동자들이 망가지는 모습을 무수히 목격하며 ‘이렇게 해야만 공장이 돌아갈 수 있을까?’ 의문을 품게 된다.
그러면서 오언은 산업혁명의 효율성과 인간의 존엄이 모순되지 않고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 과감한 투자를 시작한다. 먼저, 노동시간을 14시간에서 9시간으로 획기적으로 단축시킨다. 공장 주변에 마을을 조성하고, 화단을 만들고, 도서관을 만들고, 글자를 가르쳤다. 또한 아이들을 잘 키워야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최초의 유치원을 만들어 아이들을 돌보았다. 임금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대신 삶의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그 결과 공장의 생산성이 어마어마하게 올라가 러시아 황제, 귀족, 학자 할 것 없이 유럽 전역에서 견학 행렬이 이어졌다. 아쉽게도 ‘뉴 라나크(New Lanark)’라 불리는 이 실험은 오래가지 못했다. 주주가 바뀌는 과정에서 종교적 갈등으로 인해 쫓겨나면서 마감하게 된다.
이상적 공동체를 향한 끊임없는 실험
오언의 실험은 멈추지 않았다.
사람은 사람으로 대하면 사람이 되고, 짐승으로 대하면 짐승이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한 번 선순환 구조로 들어가면 명령이나 폭력 없이도 ‘협동’의 본능을 발휘해 스스로 기계를 제어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이를 통해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오언이 생각하는 사회변혁의 핵심은 이 기로에서 정부가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의 문제였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오언은 ‘협동촌(Village of Co-operation)’을 만드는 두 번째 실험으로 돌입했다. 전쟁 직후 실업자를 두고 영국 정부가 고민할 때였는데, 1천4백 명 정도를 한 단위로 하는 공동체를 꾸려 정부가 초기에 자금을 대고 자급자족해서 이자를 갚는 방식을 제안했다. 요샛말로 하면 ‘사회기금’인 셈이다. 영국의 많은 지배계급이 관심을 보였지만 결국 실현되지는 않았다. 이후 오언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전재산의 80% 투여해 뉴 하모니(New Harmony)를 건설했다. 결과는 ‘폭망’이었다. 오언이 꿈꾼 협동촌의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오언이 미국에 있는 동안 영국에서는 흥미로운 사건이 생긴다. 오언의 책을 읽고 세미나를 갖던 노동자들이 오언의 실험을 직접 행동에 옮긴 것이다.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했고, 그 자금을 직접 소유한 가게를 이용해 모으자는 생각으로 소비자협동조합을 만든다. 이렇게 해서 초기 오언주의 협동조합이 탄생했다. 협동조합 운동이 목표라기보다는 공동체 기금조성이 주목적이고 그 수단이 협동이었던 셈이다. 1820년대 말, 오언이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오언은 이미 영국 노동계급의 영웅이 되어있었다.
이때 오언은 또 하나 재미있는 실험을 하는데, 바로 ‘전국공정노동교환소(National Equitable Labour Exchange)’였다. 협동의 원리를 실업자들 상황에 적용했다. 실업자는 자본이 써주지 않을 뿐, 생산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는 이들이다. 각자 만들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 투여한 노동시간만큼 교환권을 지급받으면 이 교환권으로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는 식이다. 결과적으로는 이 역시 실패했지만, 자본주의가 말하는 화폐 회계단위를 따르지 않고 노동시간에 따른 노동가치론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를 21세기에 맞는 사회적회계로 되살리는 과제가 남아있다.
오언의 말년은 편안하지는 않았다. 거듭된 실패로 가난했을 뿐 아니라 노망이 나서 신령술에 빠져서 지냈다는 속설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언이 보여준 열정과 업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 젊은 오언을 기억해 주면 좋겠습니다. 서른부터 62세까지 쉬지 않고
공동체운동, 교육운동, 사회주의운동, 노동운동, 협동조합운동에 참여한
정렬적인 사회개혁가로서의 로버트 오언을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주는 시사점
1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즐기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필요하다. 시간이나 돈, 환경 탓에 소외되는 사람은 오언이 말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가 고스란히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오게 된다. 교육과 복지는 산업사회를 담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하부 구조이다. 홍기빈 소장은 책을 읽으며 오언의 교육관 눈여겨 봐주길 특별히 당부했다.
2 오언의 공동체 운동은 공유지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은 플랫폼 경제이다. 플랫폼이 비즈니스의 도구가 되느냐 관계 맺는 도구가 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공유 가능한 부분, 특히나 지식과 같은 무형자산을 최대한 공동으로 소유하면 전체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 P2P(peer-to-peer) 재단과 같이 세계적으로도 4차 산업의 가능성을 공유지 영역으로 연결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P2P 재단 공유사회로의 전환을 지향하는 연구원, 활동가, 시민 단체들의 글로벌 네트워크. peer to peer 테크놀로지의 영향을 연구하고 이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위한 네트워킹 사이트 역할을 하는 조직으로, 네덜란드에 위치하고 있다. (사이트 : p2pfoundation.net)
3 사회적회계의 단위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오언의 노동교환소는 실제로 노동자들의 생활을 조직해보려는 시도였다. 화폐단위로 평가되기 힘든 노동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주부들이 가사노동이다. 또한 부부 사이에 자녀에게 들어가는 돈을 칼같이 자르지는 않는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회계의 기준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를 사회전체로 확장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4 마지막으로 홍기빈 소장은 개인적으로 사회적경제와 노동운동이 결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원래 노동운동과 협동조합의 지향이 다른 것도 아니었고 달라서도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 오언이 꾼 꿈을 다시 하지 못하란 법 있나요?
사회적경제를 기능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돌볼 수 있는 혁신의 장으로 여기면 좋겠습니다. ”
2017. 05. 10
정리. 박소담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
[출처] [강연] 4차 산업혁명시대에 읽는 <로버트 오언>|작성자 서울시 협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