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대선 후 한 달이 흘렀다. 한 달은 짧은 시간이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는, 정책을 시행해 성과를 내기는커녕 정책을 준비하기에도 짧다. 아직 경제 분야 장관 한 사람 임명하지 못한 문재인 정부는 지난 한 달 동안 경제 개혁과 관련해 본격적인 조치를 취하지는 못했지만, 여러 시그널을 보냈다.
문재인 대통령의 ‘1호 업무지시’는 일자리위원회 설치였다. 청와대 집무실에는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했다. 일자리는 문 대통령이 대선 전부터 견지해 온 ‘소득 주도 성장론’의 핵심이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 가운데 가장 주목받은 것 중 하나가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이었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내걸고 추경 예산도 편성해 국회로 보냈다.
경제 분야 고위직 인선에서는 개혁성이 강조됐다. 청와대 정책실장에는 소액주주 운동을 해온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임명됐고, 공정거래위원장에는 ‘재벌 저격수’로 불린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대표)가 지명돼 국회 청문회를 거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의지’에 비교적 높은 점수를 줬다. 정태인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장하성·김상조와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자까지 세 사람이 모두 ‘불평등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한 점은 바람직하다”며 “(문 대통령이 주장하는) ‘소득 주도 성장’은 시장에서의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라고 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첫 출발은 잘 했다고 생각한다”며 “촛불 시민혁명으로 출범한 정부”라는 점을 언급했다. 이 소장은 “비정규직 문제 관련 첫 현장 방문지가 인천공항공사였고, 대통령이 직접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을 했다. ‘양질의 일자리’ 문제를 임기 내 가장 중요한 국정 과제로 상정한 것은 매우 상징적이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대척점에 선 정책 방향을 선명하게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소장은 “또 ‘최저임금 2020년까지 1만 원’ 등 비정규직 공약 전반이 구 민주노동당 공약과 비슷할 정도”라며 “그 공약을 다 실행하면 한국 현대사에서 늘 미제로 남아 있었던 노동 문제를 해결한 첫 번째 정부가 될 수 있어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일자리·비정규직, 촘촘한 준비 필요하다”
이 소장은 “공공부문 내 간접고용까지 포함하면 다양한 직종에서 비정규직이 있고 규모도 크다. 그것을 조기에 다 해결하려고 하는 건 무리가 따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소장은 “본보기가 되는 사업장들을 빠르게 진행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면서도 “공공부문 전체와 민간까지 아우르는 정규직화는 굉장히 촘촘한 준비가 필요하다. ‘유종의 미’까지 거두려면 좀더 세심한 로드맵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느 “인천공항공사는 몇 안 되는 흑자 공사여서, 여기서 진행한 로드맵을 다른 사업장에서 똑같이 적용할 수도 없다. 각각의 부문에서 각각의 해법이 세심하게 마련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소장은 이와 관련해, 노동정책을 총괄할 고위 당국자 인선에 주의를 기울여즐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그는 “비정규직 문제는 대단히 각별한 ‘감수성’을 요하는 문제”라며 “대통령 의지에 걸맞게 추진해서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관료 출신은 어려울 것 같다. 기계적 중립에 매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소장은 또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 기구에 들어올 수 있도록 노력과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 “첫 관문이 될 6월의 최저임금 결정이 많은 미조직 노동자들에게는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을 가늠할) 신호가 될 것”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당사자 격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신철 정책기획국장은 “대통령과,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같이 움직였던 분들은 충분히 의지가 있다는 것은 확인된다”며 “문제는 기존 정부가 싹 바뀐 게 아니지 않나. 그리고 공사는 그 전까지만 해도 사생결단할 것처럼 비정규직 해고를 하고 있었다”고 우려했다. 신 국장은 “대통령이 보여준 의지는 확인을 했다. 그걸 현장에서 어떻게 그에 맞게 진행되게 할 것이냐가 진짜 실력인데, 그 ‘실력’은 지금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국장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의 시범 케이스가 된 인천공항공사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문제에 대해 “인천공항이 상징적 모델이 되어 있는데, 모델이라는 것은 결과도 만족스러워야 하지만 ‘과정’이 만족스러워야 한다. 중요한 건 과정이고,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당사자로서 목소리 낼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부동산은?”
정태인 소장은 부동산 문제를 지적했다. 정 소장은 “불평등 개선을 왜 소득(재분배)으로 하지 않고 일자리 창출만 잡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불평등은 두 부분에서 일어난다. 첫째, 자본소득 대 노동소득의 격차이고, 둘째, 노동소득 내의 격차다. 그런데 청와대는 현재는 노동소득 내의 격차만 얘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산소득, 특히 부동산 문제를 봐야 한다”며 “이는 가계부채 문제와도 연계된 부분인데, 부동산이 급락하면 금융 위기로 갈까 조심스러운 것은 이해하지만 이 부분을 애써 무시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때인 2014년 DTI·LTV 규제를 풀면서 작년에도 가계 부채가 11.4%포인트나 늘었는데, 부동산 가격이 이 속도로 올라가면 아무리 ‘소득 주도 성장’을 해서 소득을 연 3~4% 올려줘 봐야 젊은 사람들은 집을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정 소장은 “지금은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 대해 ‘주시하고 있다’는 말만 하고 있는데, 이는 ‘당분간 부동산 가격을 잡을 생각 없다’는 시그널”이라며 “오히려 (가격 인상을) 부추기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수도권 지역 아파트를 중심으로 부동산 매매가 및 전세가가 급상승하고 있다.
정 소장은 또 “핵심 위치에 있는 세 사람 모두 산업정책에 대해서는 뚜렷한 고민이 없는 것 같다”며 “그 쪽을 (전공)한 사람이 인선되지 않아서, 산업정책은 뭐가 나올지 모르겠다. 즉 산업, 부동산 등 실물경제 부분에서 아직 나온 게 없는데, 물론 한 달만에 다 할 수는 없고 앞으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실물 부문, FTA 대책도 마련해야”
정승일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 이사도 비슷한 취지의 지적을 했다. 정 이사는 “소득 주도 성장은 맞는 방향이고 바람직하지만, (정부가) 실물 투자 얘기는 안 하고 있다”며 “투자를 어떻게 늘릴 건지 물으면 ‘중소기업 늘려서 중소·벤처기업이 투자하게 하면 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기업 총 실물 투자 중 80%가 대기업에서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정 이사는 대기업의 경우는 주식시장 논리에 따라 이익금을 장기 투자보다 배당·유보로 돌리려 할 것이라며 “대기업들에게 ‘생산·투자 늘리라’고 하기보다 ‘일자리 늘리라’는 얘기만 하는 것은, 주주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가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정부 출범 한 달 동안, 부동산 가격과 함께 주가도 고공행진을 했다. 코스피는 5월 한 달 동안 6.4% 상승했다. 이는 2012년 1월(7.1%) 이후 가장 높은 월간 상승률이다. 정 이사는 “주식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를 보면, 소비·유통주 주가가 올라갈 거라고 예상한다. 왜냐? 임금 늘리고 복지를 늘리는 ‘소득 주도 성장’이니까, 정책이 실행되면 소득이 늘어나고 여가 시간이 늘어나 당연히 소비가 늘어날 거라고 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이사는 “재벌 개혁이나 경제민주화를 ‘재벌 대기업에서 주주자본주의가 강화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된다면 한국 경제가 굴러갈 수 있을까”라고 우려하며 “누군가는 신규 업종에 투자를 해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 해서는 재벌들이 신규 업종 투자를 할 가능성은 제로다. 그 증거로, 재벌들이 다 내수 시장으로 뛰어들어 순대 팔고 떡볶이 팔고 있지 않으냐”라고 했다. 그는 “이러다 보면 5년은 버텨도 그 다음엔 무역 적자가 난다. 5년 뒤에 수출할 게 없어진다”고 우려했다.
통상 분야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한미 FTA 등 통상 정책에 대해 고언을 내놨다. 송 변호사는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FTA 얘기가 바로 나올까 우려된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정책이 계속될 수 있느냐에 대한 평가,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 예를 들어 경제민주화 같은 기조를 관철할 수 있는 FTA 모델을 협의하고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FTA가 주요 이슈가 되는 것은 성급해 보인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새 정부 경제 정책의 큰 그림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핵심 정책이 먼저 나와야 한다. ‘소득 주도 성장’의 구체적 경로가 나와야 한다”며 “그것을 바탕으로 FTA의 방향을 잡아야 하는데, 지금의 FTA는 그런 발상에서 나온 게 아니라 기존의 수출 대기업 중심 모델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 변호사는 “특히 지금 강조되는 중소기업적합업종을 FTA에 집어넣을 수 있느냐는 문제와, 미국의 일방주의적 통상 협정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 남북한 간 무관세 내부 거래에 대해 미국의 이해를 적극적으로 구하는 문제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하얀, 곽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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