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배 동맹을 어떻게 할 것인가
새 정부는 이른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경로를 채택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 기본적 방향에 있어서 도덕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유일하게 옳은 방향이라고 크게 공감하는 이들이 많으며, 소득 불균형의 해소와 성장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낼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 감수해야 할 편하지만은 않은 현실이 하나 있다. ‘분배 동맹의 재구성’이라는 문제이다. 소득주도성장이란 본래 국제노동기구(ILO) 등에서 제기된 ‘임금’ 주도성장에서 그 영감의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본래의 계획에서 어떻게 변형을 하더라도 이는 지금까지 소득 증가가 정체되거나 오히려 감소해왔던 이들의 소득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는 필연적으로 기존의 분배 구조를 바꾸어 내는 작업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특정 계층의 소득을 올리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설령 유전이 발견됨으로써 공돈이 생겨 재정 지출을 대폭 늘릴 수 있게 된다해도 그러하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모든 이들이 자신이 가진 생산 요소로 생산에 기여한 만큼에 따라 분배의 몫이 결정되는 ‘자연적인’ 경제를 상정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동화 속 이야기일 뿐이다. 실제의 소득 분배 구조는 관습이나 전통 같은 ‘문화적 요소’를 포함하여 현실에 존재하는 온갖 세력과 집단들의 힘의 균형과 불균형에 의해 틀이 만들어진다. 요컨대 현존하는 분배 구조는 현존하는 권력 구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설령 정부가 나서서 큰돈을 푼다고 해봐야 기존의 분배 구조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한 분배 동맹의 배만 불릴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존의 분배 동맹 자체를 바꾸는 작업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 한 ‘소득주도성장’이 실현될 리는 없다.
가장 중요한 정책이라 할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의 예를 들어보자. 바람직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계 상황에 처해 있는 영세 자영업자들은 죽을 맛일 터이다. 자영업자와 노동자는 한편이라거나 소득이 올라가면 경기가 살아나 모두 이익이라는 등의 논리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을 이들이 부지기수이며, 이들은 차라리 폐업하고 자기들도 알바 노동으로 전환하여 시간당 1만원이라도 버는 게 소원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 정책을 위해서는 영세 자영업자들의 소득 분배 구조에 대해서도 무언가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나서서 임금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법이 있지만, 이는 사실상 세금을 걷어 특정 부문에 재분배하는 일이 되므로 분배 구조의 변화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다른 방법이라면 프랜차이즈 본사가 개별 점주로부터 가져가는 이익 몫의 비율을 조정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프랜차이즈 기업들은 과연 여기에 순응할까? 여기에서 이익 몫의 새로운 조정을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와 그에 합당한 조치 및 제도들을 시행할 의지와 능력을 정부는 가지고 있을까?
이런 예는 도처에서 무수히 찾을 수 있다. 대학들의 수탈적인 등록금 인상 행태에 제동을 걸지 않고서 반값 등록금은 가능할까? 대기업에서 여러 차례의 하청 단계를 거치는 가운데에 누적되고 고정되어 있는 심각한 임금 격차의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 비정규직의 소득 개선이 가능할까?
이러한 기존 구조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소득 분배 구조가 ‘시장 질서에 의해 형성된 자연적인 것’이므로 이것을 인위적으로 바꾸려 드는 것은 부당한 개입이며 ‘시장경제의 훼손’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필사적으로 저항할 것이다. 물론 그런 ‘자연적인 분배 질서’ 따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쨌든 현존 체제에서 암묵적으로 보장받아 왔던 분배 구조에 손을 대는 것을 그냥 앉아서 당할 세력이나 집단도 없다. ‘소득주도성장’이 분명히 일정한 분배 구조의 개혁을 (혹은 개선을) 수반하는 것이라면, 이 힘들고 골치 아픈 과제를 피해갈 수가 없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앞에서 말한 대로 확고한 논리와 실천적 의지 및 계획을 준비해야만 한다.
작금의 우리나라 실정에서 이러한 논리와 실천이 과도하게 급진적 성격을 띨 수도 없는 일이다. 결국 ‘경제민주화’ ‘불평등 해소’ ‘공정한 경제질서’ 등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널리 합의가 이루어진 원칙들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해석해 내느냐에 달렸다고 할 것이다. 새로 형성되어 가고 있는 정부 내각 특히 경제팀의 역량과 의지에 기대를 걸어본다.
2017.06.16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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