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병 같은 ‘4차 산업혁명’비판적 상상력을 허하라
출판계·학계 ‘4차 산업혁명’ 열풍, 어떻게 볼 것인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출판계를 비롯해 사회 곳곳에서 마치 유행어처럼 쓰이고 있다. 매주 관련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관련 학회와 포럼, 세미나, 강연 등에서 앞다퉈 다루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선 비판적 고찰 없이 일방적인 성장 담론으로만 흘러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시대 4차혁명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 한 달에 16.3종 쏟아지며 출판 ‘봇물’
4차 산업혁명 관련 도서들이 붐을 이루고 있다. 2일 기준으로 예스24, 알라딘 등 온라인 서점에서 ‘4차 산업혁명’이 제목이나 부제목에 사용된 책들을 검색하면 모두 134종이 나온다. 모두 2015년 이후에 출간된 책들이다. 이 가운데 전체의 73%에 해당하는 98종은 올 상반기에 출간됐다. 지난해 출간된 관련 도서가 34종이며 2015년에는 단 2종에 불과하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출간이 이뤄져 올해는 한 달 평균 16.3종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논의가 확장된 것이다. 독일은 2010년대 들어 자국의 핵심 산업인 제조업의 세계적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돌파구를 기존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의 결합에서 찾으면서 여기에 인더스트리 4.0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4차 산업혁명이 한국 사회를 휩쓰는 유행어가 된 것은 지난해 1월 세계경제포럼(WEF)이 ‘제4차 산업혁명의 이해’를 포럼의 핵심 주제로 삼으면서부터다.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을 만들어낸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고 일하고 있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기술 혁명의 직전에 와 있다. 이 변화의 규모와 범위, 복잡성 등은 이전에 인류가 경험했던 것과는 전혀 다를 것”이라며 “유비쿼터스 모바일 인터넷, 더 저렴하면서 작고 강력해진 센서,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이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4월 출간된 그의 저서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새로운현재)은 4차 산업혁명 관련 도서 중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책은 지금까지 28쇄를 찍으며 21만부가 나갔다. 지난 대선에서 대선 후보들이 4차 산업혁명 공약을 내놓으면서 책은 더 많이 팔렸다.
■ 시민사회의 주체적 대응 필요
대선 공약에서부터 기업체 보고서, 단행본에 이르기까지 4차 산업혁명 담론은 열병처럼 번지고 있지만, 실체는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8일 문화연대 주최로 열린 긴급토론 ‘4차 산업혁명, 어디로? 기술사회의 비판적 상상력’에서 발제를 맡은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 자체가 외부로부터 수입되어 실체가 불분명한 용어이자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빠르게 대중의 의식을 장악해 가고 있다”며 “무관한 듯 보이는 학술단체를 포함해 거의 모든 학회, 포럼, 세미나, 강연 등에서 4차 산업혁명은 학술 화두이자 행사용 수사가 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만발하는 4차 산업혁명 논의가 제도적 함의에 대한 비판적 고찰 없이 일방적인 성장 담론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심우민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4차 산업혁명이 마치 새로운 세계의 패러다임 출현을 예고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을 보면 결국 국가 차원의 산업진흥 논리에 매몰되어 있다”며 “4차 산업혁명이 규제완화론의 논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오병일 정보인권연구소 이사는 “예컨대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해 업계에서는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 개발을 위해 현재의 개인정보 보호제도가 걸림돌이 되고 있으니 보호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며 “기술 발전이 야기할 위험성이 무엇인지, 한국 상황에서 어떤 정책에 초점을 맞출지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은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지칭하는 기술 변화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걸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을 일방적인 ‘기술입국론’으로 포장하는 것은 지난해 세계경제포럼 이후 한국에서만 보이는 독특한 현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안철수 후보는 4차 산업혁명을 기업에 맡겨야 한다고 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했는데 두 방식 다 문제라고 본다”며 “4차 산업혁명이 말하는 변화는 사회 전체의 변화인데 국가나 기업이 주도할 수 없다. 국가 전체의 혁신 시스템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만들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광석 교수는 시민사회의 주체적 대응을 강조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이 누구의 그리고 누구를 위한 기술인지 물어야 한다”며 “4차 산업혁명 등 국가 IT정책 사업에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기술 인권에 대한 전방위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2017. 07. 02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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