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끔찍한 거래” 진실은?
북핵문제, 미-중 사이 외줄타기 넘어서는 새 질서 구축을
문재인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은 성공했다. 보수 쪽의 말투도 한결 부드럽다. 아주 거칠게 단순화하면 한국과 미국은 ‘남북관계 주도권’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방위비 인상)’을 교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동에 대해, 지극히 사적인 내 느낌을 말하자면 “주도권이 그렇게 중요해? 그럼 가져. 대신 바로 돈이 되는 한-미 FTA나 방위비 분담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FTA 재협상 우려는 호들갑
만일 이게 그림의 전부라면 문재인 대통령은 현재 나오는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 이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론에서 여러 번 자화자찬하듯 외친 ‘한-미 FTA 재협상(renegotiation)’은 사실 ‘한-미 FTA 개정(amendment)’이기 때문이다. 실제 정상회담 뒤 백악관 부대변인이나 미국무역대표부(USTR)에서 밝힌 내용은 ‘한-미 FTA 공동위원회(joint committee)’의 소집이었다.
보수언론에 등장한 자칭 한-미 FTA 전문가들의 호들갑(“재협상은 양자가 합의해야 한다”)과 달리, 한-미 FTA 22장 2조 3항 다호엔 “공동위원회는 이 협정의 개정을 검토하거나 이 협정상의 약속을 수정할 수 있다”는 규정이 나온다. 또 나호에는 “어느 한쪽 당사국의 요청 후 30일 이내에 특별 회기로 회합한다”고 돼 있다. 즉, 어느 한쪽이 공동위원회 소집을 강제하거나 거부할 사안이 아니다. 문 대통령이나 장하성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 서둘러 ‘한-미 FTA 재협상’은 “(정상회담에서 나온) 합의 외의 얘기”라며 혹시 국내에서 논란이 번질까 진화를 시도한 것은 말 그대로 사족이었던 셈이다. 한국은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얻는 대가로 미국에 내준 게 사실상 하나도 없다.
한-미 FTA는 과연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대로 미국에 ‘끔찍한 거래’였을까? 한국의 한-미 FTA 옹호자들에 따르면 그렇다. 예컨대 지난해 한-미 FTA 발효 5주년 무렵 정부는 지난 5년간 한국의 대세계 교역 증가율이 3.5% 감소한 반면 대미 교역 증가율은 1.7%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이어, 이는 한-미 FTA 덕이며 대미 무역 흑자도 그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단순 통계만 봐도 그리 믿을 게 못 된다. 예컨대 대세계 교역 증가율과 대미 교역 증가율의 차이는 주로 대중국 교역 증가율이 급감해서 생겼기 때문이다. 2014년 통계를 보면 FTA 혜택 품목은 4.3% 늘어난 반면 비혜택 품목은 무려 19%나 증가했다.
이 점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한-미 FTA 발효 5주년 토론회에서 나는 통상 담당자에게 미국국제무역위원회(USITC)의 2016년 보고서를 소개했다. 보고서엔 2015년 미국의 대한 무역 적자가 283억달러에 달했지만 한-미 FTA가 없었다면 440억달러의 적자를 봤을 것이란 내용이 담겨 있다. 미국은 한-미 FTA로 157억달러의 이익을 본 것이다. 이 통계에 따르면 한-미 FTA는 한국에 ‘끔찍한 거래’였다. 양국의 한-미 FTA 옹호론자들이 서로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는 우스운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FTA의 구체적인 무역 불균형의 사례로 든 자동차와 철강 부문 문제도 사실과 다르다. 미국이 요구한 두 번에 걸친 ‘재협상’ 때문에 한국 자동차의 관세가 완전히 철폐된 때는 지난해다. 공교롭게도 이즈음부터 한국 자동차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관세장벽으로 언급한 연비 규제나 수리 이력 고지, 방향지시등 색깔 등은 실소를 자아낼 뿐이다. 철강은 이미 각종 반덤핑 제소에 시달리고 있으며 지난 5월까지 수출이 금액 기준 30.3%나 줄어들었다.
진짜 문제는 사드 배치 기정사실화
한-미 FTA의 문제는 상품무역 분야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한-미 FTA는 지적재산권, 서비스, 투자 등 한 나라의 법과 규칙이 규제 완화와 민영화 일변도로 갈 수밖에 없도록 규율한다. 이참에 한국 정부는 ‘저공해 차량 보조금 지급’처럼 한-미 FTA 때문에 포기했던 수많은 환경·복지 정책이 가능하도록 협정 개정을 요구해야 한다. ‘투자자-국가 분쟁 처리 절차’(ISDS)가 대표적으로 손봐야 할 조항이다. 미국과 이런 문제를 놓고 협상하는 것은 한국에 결코 불리하지 않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 두 나라의 이익만 걸린 것이 아니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문제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이 숨겨진 대형 의제였다. 한국 대표단은 국내 비판과 미국 정부의 눈치를 지나치게 본 때문인지 ‘민주적 절차에 따른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로 만들어버렸다.
올해 들어 중국 시장에서 현대·기아자동차의 판매량은 60%가량 줄어들었다. 전세계적으로 10~20%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40%포인트 정도 격차가 난 것이다. 이 차이를 발생시킨 중요한 원인이 사드인 것은 분명하다. 한-미 정상회담 이전에 중국 정부가 노골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는데도 한국 자동차의 중국 판매가 이렇게 타격을 받았다면 앞으로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사드 배치를 미국의 동아시아 미사일방어 전략의 일환으로 본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중국의 사활이 걸린 ‘핵심 이익’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고 생각한다. 사드 배치가 지금처럼 기정사실화되면 만만찮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한국은 북핵 문제라는 무거운 짐을 진 채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있다. 국제관계학은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을 균형(balancing·미국에 붙어라), 편승(bandwagoning·중국에 붙어라), 그럭저럭 버티기(muddling through·둘 사이에서 외줄타기), 초월(transcending) 등으로 분류한다. 이번 정상회담만 놓고 보면 한국은 성공적으로 외줄타기를 한 셈인데 중국은 한국이 균형전략으로 기울었다고 본다.
외줄타기 넘어 새 질서 만들어야
문재인 대통령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중국과도 그럭저럭 버티기를 시도할 것이다. 과연 이 아슬아슬한 외줄타기가 언제까지 가능할까. 사드 배치를 놓고 중국과 미국을 어떻게 설득해 북핵 문제까지 포괄하는 중재안을 내놓을 수 있을까. 아미티브 아차리아 미국 아메리카대학 교수는 한국이 아세안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 ‘합의 안보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어떤 나라도 패권을 휘두르지 못하는 지역안보 체제를 만들자는 것이다. 비미·비중의 제3지대가 주도하는 동아시아 질서. 이게 아마 현실적으로 유일한 초월 전략일 것이다. 한국 정부는 외줄타기를 넘어 새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중간자’론은 이 초월적 질서를 향해 우리가 선택할 방향이었던 것이 아닐까?
2017. 07. 10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원문보기_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