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타령
정태인 |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장
헌법 제32조 제1항 제2문은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고 선언했다. 또 최저임금법은 “저임금근로자의 생활안정을 도모하여 (…)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려는 것”이라고 법 제정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적어도 형식적으로 최저임금에 대한 우리 사회의 합의이다.
2018년 최저임금이 2017년의 6470원에 견줘 16.4% 올랐다. 최저임금의 소득효과는 확실하다. 사회적 합의를 우리가 지킨다면 최저임금 적용 대상 노동자 약 200만명의 임금이 시간당 총 21억6000만원 오를 테니 말이다. 8시간 노동, 한 달이면 4000억원에 이른다.
경제성장률의 5배가 넘는 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경제원론에 나오는 수요공급 법칙에 따르면 고용이 대폭 줄어 오히려 노동자들의 수입이 줄어들 것 같기도 하다(노동공급의 가격탄력성). 아니나 다를까,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들을 우려하는 분들이 들고일어났다. 이렇게 많은 경제학자들과 기업 단체들이 진작 중소기업과 자영업을 위했다면 현재는 중소기업의 천국이 되었을 것이다. 능히 짐작된 일, 2004년 주 5일제 근무가 시작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촛불의 주역 중 하나였던 유학파 40대 지식인들이 자못 날카롭게 예의 수급법칙을 변주해서 SNS상의 관심을 모으더니 급기야 박근혜·최순실 청문회에서 직설로 세상을 후련하게 했던 민주당의 이론가도 이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과연 최저임금의 정책 효과는 어떻게 나타날까? 한국에서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효과에 관해 연구한 논문은 그리 많지 않지만 대체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전 세계의 연구를 모아 놔도 압도적으로 많은 논문은 고용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왜? 첫째, 편의점이나 커피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들이 최저임금 16.4% 올랐으니 경제학의 노동공급곡선을 따라 돈 더 벌려고 노동시간을 늘릴까? 그 반대로 등록금과 월세를 더 적은 시간에 확보할 수 있으니 노동시간을 줄여서 남는 시간에 공부를 더 할까? 이들은 임금이 대폭 오르면 노동시간을 줄여서 다른 사람들의 일자리를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둘째, 분명 영세 자영업자들은 확실히 고민에 빠질 텐데 혹시 영업시간을 줄이는 쪽으로 대응하고 싶지는 않을까? 한국의 24시간 영업은 경제학 논리로는 성립할 수 없다. 심야시간에 해장국 몇 그릇, 잡화 몇 개를 더 팔아야 아르바이트 학생의 월급을 주고도 수익을 올릴 수 있을까? 분명 손해일 텐데도 그런 행동을 한다면 필시 자유로운 선택을 한 게 아니다. 이런 반경제적 일을 원하는 사람은 오직 하루의 전체 매출액에 따라 자신의 이익이 결정되는 집단일 테다. 맞다. 프랜차이저, 즉 갑들이 바로 그들이다.
셋째, 짐짓 거시경제를 걱정하지 마시라. 영업시간을 8시간으로 줄인다고 소비재 판매가 3분의 1로 줄지는 않는다. 줄어든다 해도 소폭일 것이다. 개인과 사회 모두에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경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면 그건 죄수의 딜레마에 빠졌다는 증거다. 나 혼자 영업시간을 줄일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때문에 바로 국가, 아니 시민이 국가의 이름으로 개입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최우선의 정책이라면 영업시간 단축은 이를 보완할 또 하나의 정책이다. 후자는 그저 편의점주 등 프랜차이지와 제조업 분야 하청업체, 한마디로 을들의 단결권만 보장해도 해결될 일이다.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물건을 사고 음식을 먹는 데는 확실히 불편해질 것이다. 규칙적으로 제 시간에 먹고, 또 사면 그만이다. 서로를 고려하는 사회규범이 확립되면 굳이 매년 최저임금을 발표하지 않아도 된다. 음식점 매상은 오히려 늘어날지도 모른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여유가 조금 생긴 분들이야말로 영세자영업의 단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과 2006년에 최저임금이 이번과 비슷하게 16.8%, 13.1% 올랐는데 그 다음 몇 해 동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최저임금 인상이 만병통치약이라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재분배 이전에, 시장에서 임금 몫이 올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 중에 최저임금을 첫 번째로 꼽지 않는 학자도 없다. 정부가 직접 개입할 수 있는 몇 안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은 내수의 증가가 생산과 투자를 촉발하는 첫 단계일 뿐이다. 예컨대 녹색 인프라를 구축하는 대대적 투자계획 없이 소비촉진만으로 경제를 살릴 수는 없다.
2017. 07. 24
원문보기_경향신문 오피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