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선언문

 

2000년대 세계 경제 위기는 우리가 경제를 생각하는 방식과 그것을 조직하는 방식 모두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인간이란 개인적 이기심을 앞세우는 존재이며, 모두가 각자의 이윤을 무한정 추구하는 것이 집단의 번영과 행복을 달성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이 지난 몇십 년간 우리를 지배하였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국가와 사회 나아가 생태 영역에 이르기까지 인간 세상 전체가 송두리째 바뀌어 왔지만, 우리는 지금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만성적인 대량 실업과 장기 침체, 양극화와 불평등이 현실이 되어 버렸으며 다양한 인간적 가치와 진정한 행복을 가져올 대안적 원리와 경제 사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시장 근본주의는 경제뿐만 아니라 경제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에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 것이다.

우리는 칼 폴라니의 사상에서 이러한 난관을 뚫고 나갈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폴라니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 아니라 온전한 사회적 존재이며, 인간 세상의 경제 활동은 시장과 수익성이라는 것 외에도, 무수히 다양한 가치와 원리를 통해 조직할 수 있으며 또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새로운 경제 질서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통념과는 전혀 다른 경제 이론과 사상의 틀이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는 칼 폴라니의 저작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키고 보급 확산하는 이론적 기틀을 마련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사회적 경제의 의미와 구현 가능성에 주목한다. 지난 몇십 년간 지구촌 곳곳에서 활발하게 자라나고 있는 사회적 경제는 화폐적 이윤만이 아닌 인간적 가치와 동기에 기반하여 다양한 사회적 관계로부터 인간의 살림살이를 마련해나가는 활동이며, 대안 경제의 원리와 가능성을 품고 있는 맹아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폴라니의 사상에 입각하여 한국과 아시아의 토양에 맞는 사회적 경제의 모델을 수립하는 임무를 수행해 나갈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다원적 경제 발전 모델’의 구상을 발전시켜나갈 것이다. 국가, 사회, 생태 등 다양한 영역의 특성이 무시되고 시장과 수익성의 원리로 우리의 세상을 획일화시킨 결과, 삶의 다양한 가치가 왜곡 파괴되었고, 경제 발전의 활력과 뿌리까지 잠식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시장 경제뿐만 아니라 공공 부문과 사회적 경제 등 여러 다른 영역들이 저마다의 역할을 맡아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는 새로운 경제 모델을 구상할 것이다.

실천의 위기는 이론의 위기이며, 이론의 위기는 곧 실천의 위기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위기도 이러한 의미에서 “이중적 위기”이며, 따라서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 또한 두 지평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는 칼 폴라니의 경제 사상에 대한 연구와 사회적 경제의 이론과 실천을 결합하여, 물질적 풍요와 더불어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이상이 함께 실현되는 새로운 경제 질서를 찾아가는 데에 진력할 것이다.

2015년 3월 17일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협동조합 조합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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